"이회창과 3김청산하고 새정치 하려했지만 3김에 패배"
"개헌·지방분권·국회선진화 이루면 정치입문 사명 다하는 것"
1988년 4월 26일 치러진 13대 국회의원 총선거 전 김영삼 당시 통일민주당 총재와 김대중 평민당 총재가 이 사람을 영입하려 했지만 실패했다. 7년 뒤인 1995년 15대 총선을 앞두고 양김씨는 다시 이 인사의 영입에 나선다. 7년 전과는 다른 위치에서다. 김영삼 총재는 임기 말 레임덕에 빠진 대통령으로, 김대중 총재는 국민회의를 창당한 야당 총수였다.
경쟁자였던 두 사람에게 곧 있을 15대 총선은 최대 정치승부처였다. 7년 전 영입 제의를 거절했던 인사를 다시 찾은 이유는 그만큼 이 선거가 갖는 정치적 의미가 크고 두 사람 모두 절박했기 때문이다. 바람을 일으킬 참신한 인물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 주인공이 현 한나라당 원내사령탑 안상수 원내대표다.
박종철군 고문치사 사건 주임검사로 이름을 알린 안 원내대표는 88년 13대 총선 직전 두 야당 거물 제의를 걷어찼다. 7년 뒤에도 안 원내대표는 영입제의를 거절했다. 김영삼 당시 대통령은 그를 청와대로 불렀고, 김대중 총재는 동교동 자택으로 초대해 식사를 대접했지만 안 원내대표는 두 거물을 보고 "새로운 정치를 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지난달 27일 뉴데일리 창간 4주년 인터뷰에서 그는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뒤 검사직을 던졌고 인권변호사로 8년을 일해보니 한계를 느꼈다"며 "우리나라 정치를 한 번 바꿔보자는 생각을 했지만 김영삼 김대중 대통령은 새로운 정치를 할 것 같지 않아 (영입제의를) 거부했다"고 말했다. 두 거물의 구애를 뿌리치고 잡은 손은 이회창 당시 신한국당 총재다.
안 원내대표는 "96년 1월 법조계에서 신망받던 이회창씨가 신한국당에 입당해 대표를 맡는다는 소리를 들었고 '저분과 같이 정치를 한다면 새로운 정치를 할 수 있겠다' 싶어 이 총재 입당 보름 뒤 신한국당에 입당했다"고 정치권 입문 과정을 설명했다. 당시 그는 "3김(김영삼·김대중·김종필)을 청산하고 새로운 정치를 펴보겠다"는 꿈을 꿨다. 그러나 안 원내대표는 "오히려 3김한테 패배하며 실패했다"고 말했다. 이 총재가 두 번의 대선도전에 모두 실패하면서다.
그 뒤 함께 새로운 정치를 할 인물로 이명박 대통령을 택했다. 안 원내대표는 "김대중 노무현 두 대통령에게 패하며 좌절된 새로운 정치는 이 대통령이 당선되면서 기회가 왔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을 통해 새로운 정치의 기회를 찾은 그의 목표는 이제 분권형 대통령제로의 개헌, 지역균형발전을 위한 지방분권과 국회 선진화다.
안 원내대표는 먼저 "현실적으로 우리나라 정치가 제대로 자리매김할 정치구도가 아니란 인식을 지난 14년간 해왔다"며 "국회는 매일 정략적 동기에 의해 싸움이 벌어지고 국민 민복을 위하기보다 다음 대선의 대리전쟁터가 되는 것을 지켜보며 '대통령제로는 국회가 영원히 국민으로부터 불신을 받을 수밖에 없고 악순환은 계속되겠다'는 생각을 한다"고 말한 뒤 "방법은 개헌을 통해 권력을 분산시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안 원내대표는 또 "중앙과 지방이 분권하면 진정한 민주주의를 이룰 수 있고 지역감정도 많이 없어질 것이다. 예를 들면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연립정부를 세울 수도 있다"며 "전부 아니면 전무라는 식의 살벌한 게임이 정치에서 사라져야만 정치가 평화적 정권교체를 이룰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국회는 일을 하는지도 모를 정도로 여야가 서로 정략적 동기에 의해 싸우고 있다"며 "결국 다음 대통령 선거를 위한 기싸움"이라고 꼬집은 뒤 "내가 국회의장을 하려 한 것도 이것은 반드시 이뤄야겠다 싶어서였고 정치도 어느 정도 정상화된다. 그러면 내가 정치에 들어온 사명은 다하는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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