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생지신(尾生之信). 목숨까지 버리며 지켜야하는 신의를 칭송한 것일까, 아니면 미련하게 명분에 집착해 자신을 망치는 어리석음을 가리키는 말일까. 세종시 문제를 둘러싸고 여당내 전현직 지도자 사이에 미생지신 논쟁이 뜨겁다.
정몽준 한나라당 대표는 14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이 고사를 언급, 융통성없는 미생을 꼬집으며 박근혜 전 대표의 세종시 원안 고수 입장을 우회적으로 비판했고 이에 박 전 대표는 18일 "미생은 진정성이 있었고 그 애인은 진정성이 없다"고 맞받았다. 박 전 대표는 "미생은 죽었지만 귀감이 됐고 애인은 평생 괴로움속에서 손가락질 받으며 살았을 것"이라고도 했다.
두 정치인이 인용한 고사의 원문은 이렇다고 한다. "신여미생 여여자기어량하 여자부래 수지부거 포주이사(信如尾生 與女子期於梁下 女子不來 水至不去 抱柱而死)". 춘추시대 노(魯)나라에 미생(尾生)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다리 아래서 만나기로 약속했던 여자는 오지 않았고, 그는 소나기가 내려 물이 밀려와도 끝내 자리를 떠나지 않고 기다리다가 마침내 교각을 끌어안고 죽었다는 내용이다.
사기(史記)소진열전(蘇秦列傳)과 장자(莊子)도척편(盜跖篇), 전국책(戰國策)의 연책(燕策), 회남자(淮南子)의 설림훈편(說林訓篇) 등에 이 이야기가 등장한다.
전국시대 소진은 이 고사를 들어 자신의 신의를 강조하며 연(燕) 소왕(昭王)을 설득해 주위의 의심을 떨치고 고위 관직에 올랐다고 한다. 그러나 소진 이외 다른 기록에서는 모두 이 이야기를 작은 명분에 집착한 융통성 없는 예로 들고 있다.
장자는 공자와 대화를 나누는 도척의 입을 빌어 미생을 다음과 같이 거침없이 비판한다. "이런 인간은 제사에 쓰려고 찢어발긴 개나 물에 떠내려가는 돼지, 아니면 쪽박을 들고 빌어먹는 거지와 다를 바 없다. 쓸데없는 명분에 빠져 소중한 목숨을 가벼이 여기는 인간은 진정한 삶의 길을 모르는 놈이다."
또 전국책에서는 미생과 같은 신의는 단지 사람을 속이지 않는 데 불과할 따름이라고 하고, 회남자에서도 미생의 신의는 차라리 상대방을 속여 순간의 위험을 피하고 후일을 기하는 것만 같지 못하다고 했다.
이같은 기록만 따진다면 한쪽의 판정승이라 볼 수도 있겠지만, 시대와 상황에 따른 고사의 해석에 대해 옳고 그름을 따질 수는 없는 문제라는 시각도 많다. 전국시대 고사를 상반되게 해석하면서 서로를 공격하는 양상이 여당내 세종시 논란의 단면을 보여주고 있다. 상생(相生)을 찾기 힘들다는 지적이다. 어떤 결과로 이어지더라도 상대에게 절반의 상처가 남도록 해주겠다는 논쟁으로 비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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