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MZ 미래연합 만든 이춘호씨 “통일후까지 한국 대표 유산으로”
보존 학술 연구-다큐 제작...내년엔 대규모 국제학술대회 계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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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내내 “이젠 생각 안 하기로 했다”고 몇 차례나 되뇌였지만 모질지 못한 사람은 그렇기가 쉽지 않은 노릇이다.
정승 벼슬 안 하면 그만이지만, 평생 봉사하며 살아온 삶, 노력하며 흘린 땀이 ‘투기’라는 단어로 포장된다면 정말 ‘미칠 노릇’이 아닐 수 없다.
지난 2008년 2월 24일 오후 7시30분께 이춘호 여성부 장관 내정자는 삼청동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 기자들 앞에 섰다.
마이크 앞에 선 이 내정자는 허리를 깊숙이 숙여 인사한 뒤 한동안 침묵을 지키다 “저는 오늘 여성부 장관 내정자의 직을 물러나고자 한다”고 어렵게 말문을 열었다.
이 내정자는 “저는 일생을 바르게 살아왔고 공익을 위해 일해 왔다고 자부한다. 저로서는 이런 비판을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억울함을 호소하면서도 “내일 2월 25일이면 새 정부가 5000만 국민과 함께 출범한다. 힘차게 출범해야 할 이명박 정부의 걸림돌이 되지 않기 위해 저 이춘호는 내정직에서 물러나고자 한다”고 결심 배경을 설명했다.
이날 이 내정자는 “여성권익 향상을 위해 앞으로도 더 열심히 노력하겠다”고 말하는 대목에서 깊은 한숨을 내쉬었고 “당선인에게 부응하지 못한 제가 부끄럽고 죄송스럽다”고 말할 때는 목소리가 떨려나와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18일 여성부 장관 내정자로 발표되고 엿새만이었다.
그 엿새 동안 이 내정자를 괴롭힌 것은 전국 각지에 40건의 부동산을 소유해 부동산 투기를 했다는 의혹과 서초동 오피스텔 매입과 관련, “내가 유방암 검사에서 아니라는 결과가 나오자, 남편이 감사하다고 기념으로 사준 것”이라는 대답이었다.
그로부터 1년 9개월이 지났다. 여성부장관 내정자였던 그를 DMZ 미래연합 상임대표라는 신분으로 만났다. 이 대표는 EBS 이사장과 자유총연맹 부총재,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이사를 맡고 있기도 하다.
“40건이 되는 부동산 중에서 아들을 위해 산 한 건을 빼고는 모두 물려받은 것이었어요.”
시댁은 김천의 부호였다. 나중에 사업을 부산으로 옮기니 부산에도 부동산이 생겼다. 청주의 친정에서도 부동산을 물려줬다. 상속세 한 푼 빼놓지 않고 낸 부동산인데, 내 돈 들여 산 땅도 아닌데 투기라니 기가 막혔단다.
“서초동 오피스텔은 말 그대로 유방암 검사에서 암이 아니라는 결과가 나오자, 남편이 감사하다고 사준 것이 맞아요.”
이 대표는 본인 소유의 오피스텔을 여성유권자연맹에 사무실로 쓰라고 무료로 임대를 해왔다. 그를 딱하게 여긴 남편이 ‘원고라도 쓸 공간으로 하라’고 덜컥 계약을 했다. 집에서 20분 거리에 있는, 우연히 함께 산책 나왔다가 맘에 드는 집이 있어 사게 된 것이었다.
“당신 원고도 쓰고 밤엔 나와 여기서 함께 음악이라도 들읍시다.”
지금은 세상을 뜬 남편은 그때 그렇게 말했단다.
아내가 건강하다는 소식에 기뻐하지 않을 남자가 있을까? 엄한 경상도 가문의 맏며느리로 들어와 저녁상을 하루에도 5~6차례나 차려내던 아내, 그래서 손마디 굵어진 아내가 편히 살만하니 ‘암 의심’이라는 진단을 받았을 때 가슴 무너져 내리지 않을 남편이 있을까?
그리고 다행히 암이 아니라는 판정을 받았을 때 남편은 고생시킨 아내에게 ‘신세 갚을 날이 남았다’는 고마움을 느끼지 않을까?
“언젠가는 변명이 아니라 제 속내 훌훌 털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그런 기회도 안주네요.”
아니 단 한번 있었단다. 지난 9월 15일 EBS 이사장에 선임됐을 때였다. 국회에 나가 제대로 속내를 털어놓으려 했는데 야당 측 상임위 의원이 막았다. 그리곤 한 마디 했단다. “그건 다 지난 얘기니...” 정치도 언론처럼 ‘정정방송’은 생리적으로 싫어하는 모양이다.
본론으로 얘기가 돌아왔다.
왜 하필 DMZ일까?
발상의 시작은 꽤 세월을 거슬러 올라간다.
1977년께 부모님을 모시고 유럽 여행을 했다. 미국 펜실바니아대학서 정치학을 공부하고 가정법률상담소 워싱턴지부 간사와 조직부장을 맡았을 때였다. 영국이며 이탈리아를 돌고 파리 세느강에서 한참을 생각했단다.
‘이들은 선조가 남겨준 문화유산으로 관광객이 들끓는데 한국을 찾게 할만한 관광상품은 무엇이 있을까.’ 그때 떠오른 것이 DMZ였다.
귀국 후 대학에서 여성학을 강의하고 여성개발원, 성폭력상담소, 한국여성유권자연맹 등에서 일을 하다보니 잠시 DMZ를 잊었다. 이 대표는 한국여성유권자연맹 13,14대 회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잊고 있던 DMZ를 다시 떠올린 것은 지난해 2월 장관 내정자 사퇴 이후였다. 상처받은 마음을 달래려 강원도의 절들을 순례하다가 자연스레 DMZ와 만나게 됐다. 30년만의 재회였다.
말 많고 탈 많은 정치와 아무 관련이 없는, 우리 민족의 아픔을 그대로 껴안은 역사의 속살이라는 생각에 DMZ에 ‘미치기로’ 했다.
DMZ에 대한 마음을 이 대표는 이렇게 표현했다.
아름다운 민통선을 따라 달리면서
아픈 역사의 그림자에 가슴이 너무 아렸습니다.
그러나 거기엔
생명이 있었습니다.
평화가 있었습니다.
희망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미래가 있었습니다.
생명, 평화, 희망을 엮어
미래의 세계적 문화를 만들려고 합니다.
이데올로기의 갈등을 극복하고
세계인의 관심과 사랑을 받는
아름다운 땅,
축복의 땅,
행복의 땅으로 가꾸고 보전하여
세계 유일의 자산으로 DMZ를
자유롭고 아름다운
희망의 땅으로 만들어 가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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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달 발품을 팔아 DMZ 미래연합를 구성했다. 많은 분들이 이 대표의 뜻에 공감해 참여를 약속했다. 서울과 경기, 강원도에 각각 본부와 지부를 만들고 춘천엔 DMZ 연구소도 마련했다.
어디서 돈 한 푼 주는 곳 없다. 지금까지는 사재를 털었고 앞으로 규모가 커지면 회원들에게 소액을 모금하는 방식으로 운영해나갈 계획이다.
국가 브랜드화를 위한 DMZ 역사문화사업이며 유엔 산하기구와 유네스코에 문화유산 등재, DMZ 정보의 데이터베이스 구축, 학술 연구와 조사를 통한 DMZ 보존과 유지 등 할 일은 태산이다.
“통일 전이나 통일을 이룬 후라도 DMZ는 평화와 생명의 땅으로 세계적인 가치를 가진 공간입니다.”
이 대표는 6.25전쟁 60주년을 맞는 내년엔 세계 석학들과 한국 국제정치학자 등 500여명이 참석하는 국제학술대회를 준비하고 있다. 또 DMZ를 세계에 알릴 다큐멘터리도 계획하고 있다. 다큐멘터리는 내년 열리는 G20 정상회의에 참가하는 각국의 정상이며 관료, 언론인들에게도 보여줘 DMZ에 대한 세계적 관심을 유도한다는 계획이다.
당장 이번 24일엔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 20층 국제회의장에서 DMZ 미래연합 창립총회를 갖는다. 큰 결실을 위한 첫 발을 내딛는 자리다. 고문을 맡은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이 기조연설을 한다.
바쁜 사람이 다시 큰일을 자원했다. EBS 이사장도 분주한 자리인데 이제 DMZ까지라. 그런데 그밖에도 일들이 많다. 강연이나 위원회 참석으로 받는 돈은 고인이 된 남편의 고향인 김천인재양성재단에 보내고 주거지인 서초구에선 서초자원봉사단 공동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부산 사랑의 도시락 보내기 운동본부에도 성원을 보내고 어머니 포순이 봉사단 일도 한다.
모두 남 좋은 일, 내 돈 써가며 하는 일이다. 봉사와 헌신으로 얻는 보람과 기쁨에 비하면 글쎄, 그까짓 장관 아무 것도 아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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