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동석 "무죄 판결 보니 PD수첩팀이 왜 당당했는지 알것 같아”
언론 가장한 PD수첩 허위의 독버섯들이 민주투사 되어서야...”
“국론분열과 대한민국을 국제적인 웃음거리로 만든 PD수첩 제작진에 대해 면죄부를 준 사법부는 과연 이 나라의 법질서와 기강을 세우는 최후의 보루인지를 되묻고 싶다.”
민동석 전 농림수산식품부 농업통상정책관이 PD수첩 제작진에 대한 법원의 무죄 판결에 대해 날선 비판을 하고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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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언론을 가장한 PD수첩 제작진을 ‘영웅’이나 ‘민주언론투사’로 역사에 기록되게 한다면 우리 후손이 우리를 어떻게 평가하겠나”고 되묻기도 했다.
민 전 정책관은 “PD수첩 제작진이 광우병에 걸린 소는 외부 자극에 민감해 동영상대로라면 주저앉지 않고 격렬하게 반응했을 것”이라며 “제작진은 광우병이 아닌 것을 알면서도, 이 소를 광우병으로 몰아 국민들에게 공포감을 심어줬다”고 말했다.
또 한국인만 유전적으로 인간광우병에 취약하다는 내용도, 사실이 아니라고 반박했다.
그는 촛불시위 때의 참담한 심정도 밝혔다.
“내게 쏟아지는 온갖 욕설과 저주 등은 버텨낼 만했다. 하지만 내 가족을 죽이겠다는 협박전화를 받았을 때는 한 집안 가장으로서 고개를 들 수 없을 정도로 비참했다.”
민 전 정책관은 “국민의 역적으로 몰아가는 상황에서 내 신변 안전에 대해 보호를 요청하는 것도 부담스러워 포기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는 “법원의 편향된 판결을 보면서 PD수첩 제작진이 그처럼 당당하고 여유 있는 태도를 보였던 이유를 알 것 같다”라고 말하고 “PD수첩의 미국산 쇠고기 보도는 이미 언론이 아니고 저의가 의심되는 선동이었고 방송에서 30곳 이상을 의도적으로 조작, 변조, 왜곡, 과장을 한 것을 정당한 정책비판과는 거리가 멀다”고 다시 강조했다.
이어 “선동방송으로 공직자의 30년 명예를 물거품으로 만든 PD수첩은 이미 공익이나 정의와는 거리가 멀다는 생각”이라며 “언론의 자유라는 나무 아래에서 더 이상 PD수첩과 같은 허위의 독버섯이 다시는 발을 붙이지 못하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민 전 정책관은 공직자로서의 명예회복을 위해서라도, 향후 소송에 적극적으로 나설 것이라며 “법원 앞에서 1인 시위라도 하고 싶다”고 강조했다.
민 전 정책관은 1979년 7월 제13회 외무고시로 외무부에 입부한 후, 주영국대사관과 주사우디대사관 2등서기관을 거쳐 1989년 주제네바대표부 1등서기관으로 우루과이라운드 협상대표를 맡았다.
1991년 3월 외무부장관 비서관과 1993년 3월 주미국대사관 1등서기관에 이어 통상기구과장과 기획예산담당관을 거쳐 1999년 2월부터 2년간 김학수 사무총장 재임시 유엔(UN) 아시아태평양경제사회이사회(ESCAP) 자문관으로 일했다.
2006년 2월 한미 FTA 협상이 출범하자 농림부장관의 요청에 따라 그해 5월 농림부 농업통상정책관(차관보)으로 자리를 옮겨 당시 기피 대상이었던 한미 FTA 농업협상을 진두지휘했다. 2007년 3월부터 격상된 한미 FTA 고위급 협상과 장관급 최종협상에서는 농업분야협상 고위급 대표를 맡아 미국정부의 리차드 크라우더 (Richard Crowder) 무역대표부 농업협상담당대사와 담판을 벌여 농업 협상에서 ‘선방’함으로써 전체 한미 FTA 협상을 타결하는데 결정적으로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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