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3월 24일 수요일

맹인 검객 황정민, 연기의 `진정성`을 논하다

"할 수 있는 건 눈을 감고 흉내내기 뿐…고민 많았다"
차승원 "이 배우가 괜히 황정민이 아니구나 느꼈다

 

김은주기자

 

영화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에서 보이지 않는 눈으로 시대의 혼란을 멈추려는 맹인 검객 황정학으로 돌아온 배우 황정민. 23일 오전 숙명여대아트센터에서 열린 영화 제작발표회 현장에 참석한 그는 그가 처음 도전한 맹인 연기를 통해 연기의 진정성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다고 털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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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에서 맹인 검객 황정학 役을
 연기한 배우 황정민 ⓒ 뉴데일리
 
오랜 기간 연극 무대에서 쌓은 탄탄한 실력과 진심이 묻어나는 연기를 선보이며 <와이키키 브라더스>, <바람난 가족>,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 <사생결단>, <행복>, <그림자 살인> 등 장르와 역할에 구애 받지 않는 다양한 필모그래피를 만들어 내며 영화를 향한 열정과 연기 내공을 쌓아 온 황정민. 그는 <너는 내 운명>에서 순박한 시골청년의 순애보를 선보이며 대종상, 청룡영화상, 대한민국 영화대상 남우주연상을 모두 휩쓸어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연기파 배우로 자리매김 하며 관객들에게 무한한 신뢰를 선사하는 배우로 평가받고 있다.

그런 황정민에게도 맹인연기 만큼은 쉽지 않았다. 그냥 맹인이 아니라 칼을 자신의 몸처럼 사용하는 맹인 검객.

그는 "액션 연기는 그리 어렵지 않았어요. 제 삶이 액션이니까요"라고 웃으며 말한 뒤 "맹인 연기라는게 제가 그저 흉내낼 수 밖에 없는 거잖아요. 저는 늘 진정성 있는 연기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 중 하나인데..."라며 "표현력에 있어서 많은 고민을 했고, 비록 흉내뿐이지만 그 안에 저만의 진정성을 표현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라고 조심스럽게 말해 맹인 연기에 대해 깊이 고민했음을 짐작케 했다.

실제 맹인이 될 수 없는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눈을 감는 것 밖에 없었다. 칼을 다뤄야 하는 연기이기에 어려움이 있었을 법 하지만 그는 "앵글이 멀리 있으면 살짝 눈을 뜨기도 했어요"라며 장난스럽게 말한 뒤 "상대 배우분들이 다 배테랑이라 호흡을 잘 맞춰줘서 다치지 않고 연기할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그렇게 그의 숱한 고민을 거쳐 탄생한 맹인 검객 황정학은 표정 하나부터 걸음걸이까지 디테일하게 황정민의 진정성이 담겨있는 배역으로 재탄생 됐다.

영화 속에서 라이벌로 함께 연기한 차승원은 그에 대해 "함께 연기 하면서 다시 한번 그가 '괜히 황정민이 아니구나'라는 생각을 했습니다"라며 "상대배우를 잘 받아주고, 또 자신이 뭘 해야할지 정확히 알고 있는 그런 배우예요. 정민씨와 함께 하면서 연기는 경쟁이 아니라 화합이라는 것을 다시금 깨달았습니다"라고 평가했다.

"칼잽이는 칼 뒤에 숨어야 하는 거여", 임진왜란의 기운이 조선의 숨통을 조여 오고 민초들의 삶은 피폐해져만 가던 선조 25년. 낡고 허름한 행색과 능청스러운 농담 뒤에 예리한 통찰력과 뛰어난 무술 실력을 감춘 전설적인 맹인 검객 황정학은 이몽학과 함께 대동계를 이끌었지만, 나라가 점점 혼돈의 세상으로 빠지고 대동계마저 역모로 몰리자 속세를 미련없이 떠나는 인물이다. 이몽학의 잠재되어 있는 야망을 늘 경계하던 그는 급기야 대동계가 이몽학에 의해 반란세력으로 이용되자 이를 막기로 결심하고 지팡이 속에 숨겨둔 칼을 떠내든다.

맹인검객 황정학은 대동 세상을 함께 꿈꿨던 이몽학의 야망을 막기 위해 칼을 들고 반란군 이몽학은 오로지 자신의 꿈을 좇아 피도 눈물도 없는 칼을 휘두른다. 그들의 칼이 칼집에서 꺼내지는 순간과 칼과 칼이 서로 부딪히는 찰나, 그것은 단순한 액션에 그치지 않고 그들의 사연과 감정이 말보다 더 강렬하게 부딪히는 '칼의 대화'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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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에서 맹인 검객 황정학 役을

 연기한 배우 황정민 ⓒ 뉴데일리

 

이준익 감독은 판타지적인 와이어 액션을 배제하고 두 발을 땅에 디딘 채 몸과 몸이 맞부딪히는 사실감 있는 액션을 통해 이러한 의도를 더욱 살렸다. 드라마의 기승전결에 적절하게 배치되어 인물들의 갈등을 파워풀하게 담아내는 칼 싸움 장면들은 액션 자체의 시각적 쾌감 뿐 아니라 영화 전체의 내러티브와 맞물리며 더욱 강렬하고 깊이 있는 작품으로 완성된다.

이 감독은 황정민에 대해 '너무 폼 안잡는 배우'라고 평가한다. 그는 또 "황정씨는 술을 마시면 굉장히 익살스럽게 변해요"라며 "폼 잡는 걸 싫어해서 배우들끼리 고기를 먹으러 가도 항상 먼저 고기도 굽고 자르고 그래요"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황정민은 "저 나름대로 폼을 잡고 있는데 감독님 말씀을 들으니 좀 더 잡아야 할 것 같네요"라며 "감독님 저도 폼 있는 사람입니다"라고 말해 이날 객석에선 웃음이 흘러 넘쳤다. 맹인 검객이라는 새로운 캐릭터에 도전한 그. 그가 다시 한번 한국 영화계를 매료 시킬 것으로 기대된다.

한편 영화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은 왜구의 침입과 지독한 파벌 싸움으로 국운이 기울어가던 16세기 조선을 배경으로 평등한 세상을 꿈꾸는 검객(황정민), 왕족 출신의 반란군(차승원), 세도가의 서자(백성현), 기생(한지혜)의 신분을 가진 네 인물이 역사의 한 가운데를 관통해 가는 대서사극으로 내달 29일 개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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