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0월 18일 월요일

`대물` 대박 이유는?

‘대물’의 인기비결은 ‘평범한 국민들의 정서 반영’
민주·한나라 포함, 정치권 전반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을 반영

 

전경웅기자

 

난 10월 6일부터 방영된 한 드라마가 화제다. 그 주인공은 바로 SBS의 ‘대물’. 시청률 조사기관 TNS에 따르면 첫 방영부터 18%라는 시청률을 기록한 뒤 지난 14일에는 23.4%까지 올랐다고 한다. 지금은 주인공의 어록과 재방송 일정까지 포털 인기 검색어에 오를 정도다.

드라마 ‘대물’은 박인권 씨의 원작 만화 ‘대물’을 드라마로 각색한 것이다. 아나운서 출신이었던 한 여성이 남편의 죽음을 계기로 사회활동을 시작, 불의에 맞서면서 나중에 정계에 투신하게 되고 3년 후에는 대통령까지 된다는 줄거리다. 큰 줄거리만 보면 별 거 없는 드라마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대사와 설정에서 드러나는 사회의 부조리와 불만에 대한 풍자가 시청자들에게 큰 대리만족을 주고 있다. 

“그 사람은 이 나라를 지켰는데 이 나라는 왜 그 사람을 지켜주지 않았나”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 되는 주인공 ‘서혜림(고현정 분)’이 정치에 투신하게 되는 계기는 종군기자(카메라맨)인 남편이 취재를 위해 아프가니스탄에 갔다가 탈레반에 납치된 뒤 함께 납치된 일본 기자들은 정부의 노력으로 풀려나는데도 우리 정부는 ‘힘이 없다’는 이유로 별다른 관심을 쏟지 않아 자신의 남편이 죽게 된 것에 분노하면서부터다.

주인공은 극 중에서 “그 사람(자신의 남편)도 대한민국 국민이었어요. 육군 포병으로 나라를 지켰고, 월급에서 꼬박꼬박 세금도 냈어요. 그런데 그 사람이 죽어갈 때 이 나라는 뭘 했냐구. 그 사람은 이 나라를 지켰는데 이 나라는 그 사람을 왜 안지켜줬냐고!”라고 절규한다. 주인공이 “나라 없는 백성도 아니고, 우리가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게 죄입니까”라고 외치는 대목에서는 많은 시청자들이 ‘울컥했다’는 소감을 털어놨다.

극 중 주인공 서혜림(고현정 분)이 종군기자인 남편(김태우 분)이 피랍된 뒤 처형된 소식을 듣고 실신한 장면. 이 사건을 계기로 서혜림의 활동이 시작된다.(자료화면: SBS 방송캡쳐)ⓒ
 
▲극 중 주인공 서혜림(고현정 분)이 종군기자인 남편(김태우 분)이 피랍된 뒤 처형된 소식을 듣고 실신한 장면. 이 사건을 계기로 서혜림의 활동이 시작된다.(자료화면: SBS 방송캡쳐)ⓒ

이런 반응에 일부 언론들은 ‘2004년 이라크에서 납치돼 처형된 故김선일 씨 사건을 떠올리게 한다’고 말했지만 그건 일부만 맞는 이야기다. 시청자들이 이 대사에 호응하는 건 지금까지 자국민 보호에 대한 우리 정부의 무관심을 제대로 꼬집었기 때문이다. 

지난 10여 년 동안 해외에서는 한국인을 노린 납치 사건이 빈발했다. 2004년 故김선일 씨 처형 사건은 물론 2006년 4월 동원호 피랍 사건, 2006년 10월 골든노리호 피랍사건, 2006년과 2007년 나이지리아에서 활동하던 건설회사 간부들 납치, 2007년 샘물교회 사건 당시 탈레반과 직접 접촉한 국정원장의 태도, 2007년 마부노 1, 2호 납치 당시 정부 당국의 태도, 2008년 초 필리핀 남부 지역에서 납치됐던 사업가 사건, 2008년 9월 브라이트 루비호 피랍사건, 2008년 11월, 켐스타비너스호 피랍사건, 2010년 4월 삼호드림호 사건 등이 그나마 유명하다.  

하지만 이 외에도 우리 언론에서는 보도되지 않은 사건들이 많다. 일부는 괴담이 되어 인터넷을 떠돈다. 대표적인 게 해외여행 부부 납치살해 사건이다. 일각에서는 한 해에 해외에서 사고나 범죄에 희생당하는 한국인의 숫자가 수백 명이 이른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반면 재외국민들을 보호하기 위한 정부의 노력이나 전담조직 규모, 예산은 미미한 수준이다. 연간 해외여행객의 숫자는 1000만 명이 넘는데도 불구하고 재외국민보호 관련 예산은 수십억 원 수준. 複數의 외교통상부 관계자는 이 같은 문제들에 대해 “저희도 답답하다”며 “저희 내부에서도 나름대로 노력하고 있지만 국제적 룰(Rule)을 지켜야 하는 부담에다 외부에는 말하기 어려운, 여러 가지 문제들이 혼재돼 있다”고 답한 바 있다.

정보기관 관계자들 또한 이 문제에 대해 답답해하는 건 매한가지. 지난 정부의 권력 핵심층들은 정보기관에 ‘경제첩보 능력이 필요하다’는 요구하면서 각 부서의 유능한 인재들이 경제파트로 대거 자리를 옮긴 적이 있었다. 반면 당시 재외국민납치사건도 빈발하기 시작했지만 권력 핵심층에서는 이 문제에 대해 별 다른 관심이 없었다고 한다. 이번 정부 또한 대통령이 대선 공약으로 ‘재외국민보호법’을 제정하고, 총리실 산하에 독립기구를 만든다고 약속했음에도 3년이 지난 지금까지 무관심한 것으로 보인다.

현실에 대한 시청자들의 불만을 대변하다

드라마 ‘대물’에는 여의도 현실정치의 어두운 면도 나온다. 자신의 이익을 챙기기 위해 간척지 주민들을 이용해먹는 국회의원, 자신의 야망을 위해 다른 사람을 해치는 권력자들이 등장한다. ‘돈과 권력을 쥔 자들을 위해 봉사하는’ 사법부 또한 비판의 대상이다. 여기에 주인공 서혜림은 당당하게 대응한다.

한 정치인(차인표 분)이 보궐선거 출마를 권유하자 주인공은 “이민 갈 것”이라며 “마음 놓고 아이를 키울 수 있는 나라를 만들어 달라”고 되받아 친다. 간척지 주민들이 시위를 벌이자 그 원인도 찾지 않고 ‘잡아넣을 것’이라고 으름장을 놓는 검찰을 향해 주인공은 “사람 나도 법 났지 법 나고 사람 났나요. 이분들은 간척지 때문에 들끓는 모기 때문에 시위한 겁니다. 검사가 현장 한 번 가보지 않고 사무실에서 구속만 외치나요? 사람이고 짐승이고 다 죽어나가는 판에 무조건 법을 지키라는 겁니까? 법 지키다 죽으라는 소리에요? 세상에 그딴 법이 어디 있나요?”라고 외친다.

실제 현실에서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법을 지키는 사람만 바보가 되는 세상이라고 생각한다. 가까운 예로 교통질서를 지키는 것에서부터 크게는 사업을 하면서 정치인, 공무원과 유착하고, 각종 탈세와 불법행위를 하는 자들이 오히려 큰 소리를 친다. 비자금 조성, 편법 증여 등 각종 탈세 행위를 저지른 재벌들은 휠체어만 타면 곧잘 풀려나고는 몇 달 뒤에는 우리 사회의 희망인양 포장되고, 불법 행위를 저지른 정치인들은 몇 년 지나면 ‘중진 의원’이 되어 있는 경우가 허다하다. 연예인들은 병역 면제를 받으려 온갖 불법을 저지르는 건 물론, 스폰서로 불리는 매춘, 음주운전, 뺑소니, 마약, 도박 등으로 사회적 물의를 빚었음에도 얼마 후 방송에 나와선 사회의 ‘모범’인양 행동한다. 수입도 연간 수억에서 수십 억 원이다.

반면 평범한 월급쟁이나 영세 자영업자는 법을 지키고 살아도 누구 하나 인정해주지 않는다. 단 한 번이라도 사소하게 법을 어기면 사회생활마저 끝나는 경우가 태반이다. 언제부턴가는 평생 일해서 저축해도 아파트 한 채 사기 어려워졌다. 이런 현실에서 ‘대물’의 주인공들은 시청자들에게 대리만족을 준다.

주인공 ‘서혜림’은 현실 정치인이 아닌 이상형

‘대물’의 주인공은 또 다른 면에서 시청자들에게 쾌감을 선사한다. 1회에서 주인공은 한미정상회담 중 긴급한 소식을 전해 듣는다. 서해상에서 우리 해군 잠수함이 중국 영해를 침범했다 좌초됐고, 침몰 중인 잠수함에는 승조원 20명이 갇혀 있다는 것.

SBS 인기드라마 '대물'의 한 장면. 주인공인 한국 대통령이 한국 해군 승조원을 구하기 위해 중국 공산당 주석에게 머리 숙여 부탁을 하고 있다.(자료화면: SBS 방송캡쳐)ⓒ
 
▲SBS 인기드라마 '대물'의 한 장면. 주인공인 한국 대통령이 한국 해군 승조원을 구하기 위해 중국 공산당 주석에게 머리 숙여 부탁을 하고 있다.(자료화면: SBS 방송캡쳐)ⓒ

이에 국방장관이 “그런 경우에는 죽음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고 말하자 주인공은 “나는 대통령직을 걸고 우리 승조원들을 구하겠습니다. 대한민국에서 더는 국가가 지켜주지 않는 국민들이 나와서는 안 됩니다. 그게 내가 대통령이 된 이유니까요”라고 대답한다. 주인공은 이를 실천하기 위해 중국 공산당 주석에게 90도로 허리 숙여 절을 하면서 사정한다. 극 중에서는 이 같은 대통령의 태도를 문제 삼아 탄핵하려는 정치인들도 보인다.

이를 보면서 시청자들은 통쾌함을 느끼는 반면 현실 정치인들은 불편함을 느끼는 모양이다. 민주당은 ‘대물’에서 악당 정치인들이 속한 정당이 ‘민우당’이라는 점, 국회 본회의실 문을 때려 부수려 하는 것, 주인공이 여성 대통령이라는 것 때문에 ‘박근혜 띄우기’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한나라당 내부에서도 이 드라마가 ‘여성 대통령 띄우기’라며 반발하는 눈치다. 하지만 그건 ‘세상의 중심은 바로 나’라는 오만에 빠져 있는 ‘멍청한 정치꾼들의 착각’에 불과하다.

박근혜 前대표가 대선을 준비해 내세웠다는 아젠다는 ‘복지국가’라고 한다. ‘복지국가’와 ‘한 사람의 국민이라도 지키기 위해 애쓰는 국가’는 그 시작점이 매우 다르다. 박 前대표는 천안함 사태 직후 몇 달 동안 단 한 마디의 말도 없었다. 그런데도 ‘대물’이라는 드라마가 ‘박근혜 띄우기’일까.

최근에는 SBS가 갑작스럽게 드라마의 PD와 작가를 교체해 논란이다. SBS측은 여기에 대해 ‘어떠한 외압도 없었다’고 답하지만 그 말을 곧이곧대로 들을 사람은 별로 없다. 지금까지 좁쌀만 한 권력만 쥐어도 이를 휘두르려는 자들을 많이 보아 온 국민들은 그 뒤에 누군가 있을 거라 의심하고 있다.  

정치인들, 유치한 자기중심주의 벗어라

이 드라마를 보면서 불편하고, 화가 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들은 ‘저것들이 뭘 알아. 현실은 저렇게 간단하지가 않아’라며 답답해할 수도 있다. 그 말이 틀린 것도 아니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이런 충고를 해주고 싶다. 이 드라마를 보면서 불편해하기 보다는 왜 이 드라마가 큰 인기를 얻고 있는지, 시청자들이 어록까지 만든 ‘대사’들 속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부터 먼저 살펴보는 건 어떨까. 그래야 당신들의 ‘그릇’을 제대로 확인할 수 있지 않을까.

우리나라에는 똑똑한 사람, 돈 있는 사람, 인맥이 넓은 사람이 꽤 많다. 이들은 결국에는 정치를 하고 싶어 한다. 정치인이나 정치지망생들은 ‘정치인’이 되는 게 목표 자체인 경우가 많다. ‘권력’을 원하기 때문이다. 반면 ‘의무’는 ‘대국민 립 서비스(Lip Service)’ 정도였다.

하지만 시청자(또는 국민)이 원하는 ‘지도자’는 ‘의무’를 먼저 생각하고 ‘목표’를 이루기 위해 정치를 하려는 사람이다. ‘의무’를 ‘목표’로 생각하는 사람은 정치인이 되지 않더라도 그 ‘의무’를 다하기 위해 평생 동안 최선을 다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게 바로 드라마 ‘대물’이 보여주려는 메시지다. 



P 뉴데일리님의 파란블로그에서 발행된 글입니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