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1월 17일 수요일

`남한 대통령이 백기 들고 장군께 빌러 왔다`

납북가족의 눈물 "파혼당하고 의심받고...불이익 비통
“어린이 납치되면 전 국민이 ‘잡아내라’ 난리인데...”

 

온종림,황소영기자

 

“북에 있는 저도 말 못 할 고생을 했지만 남한의 가족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가족들 모두 단지 납북자 가족이라는 ‘죄 아닌 죄’로 공안기관의 철저한 감시를 받아야 했습니다. 하루 벌어 하루 사는 사람들이 거의 매일 두세 시간씩 심문 아닌 심문에 시달리다 보니 생계를 이어나가기도 벅찼습니다.”

16일 오후 서울 송파구 수협 중앙회관 강당에서 열린 납북자가족모임 정기총회 및 납북자송환특별법 제정 촉구대회 강단에 선 최욱일(70)씨는 지난 악몽을 떠올리듯 비통한 표정이었다.
최씨는 지난 1975년 동해에서 오징어잡이 어선 천왕호 선원으로 조업 중 납북됐다. 북에 억류됐던 그는 지난 2006년 12월, 극적으로 북한을 탈출, 중국 옌지 등에서 은신해오다 2007년 1월 16일 한국으로 돌아왔다. 31년만의 귀향이었다.

이날 최씨는 “아들이 군 장교가 되려고 군 간부후보생 시험에 응시했다가 납북자 가족이라는 이유로 불합격을 당했다”라며 “육군 장교와 약혼까지 했던 딸은 약혼자가 나중에 납북자 가족이라는 것을 알자 신분상의 불이익을 염려해 파혼을 통고해왔다”며 “납북자 가족의 아픔을 이루 헤아릴 수 없었다”고 털어놓았다.

최씨는 “김대중 대통령이 정상회담을 위해 평양에 왔을 때 북에서는 ‘남한 대통령이 김정일 장군님께 백기를 들고 빌러왔다’고 선전했다”며 “북에서 그 소리를 듣고 얼마나 참담한 심경이었는지 모른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94~96년 이른바 고난의 행군 때 수없이 많은 북한 주민들이 목숨을 잃었다”라며 “남한에서 지원한 쌀이며 비료는 무상으로 주민들에게 공급하지 않고 쌀은 시장에서 판매하고 비료는 나눠주었다가 나중에 수확을 하면 곡물로 비료 값을 챙겨갔다”고 밝혔다.

최씨는 “아직도 북에서 신음하는 납북자들이며 국군 포로들이 많다”라며 “김 전 대통령이 풍산개를 받아올 때 차라리 납북자나 국군 포로 한 명이라도 데려올 수 있어야 했다”고 비통해 했다.      
그는 이는 “어린이 한 명이 납치되면 전 국민이 ‘잡아내라’고 난리인데 수백 명 납북자는 누구 한 사람 신경도 쓰지 않는다”고 서운함을 말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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